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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rsing

[펌] 심장 분야 최고 권위자 송명근 박사

출처 : 뉴스한국
 
은퇴 전 노벨의학상 타는 것이 목표

1992년 국내 최초 심장이식에 성공한 후 초저체온 대동맥 수술, 심장과 신장 동시 이식, 대동맥 판막 성형술 등을 모두 최초로 성공한 국내 심혈관분야 최고 권위자 송명근 박사. 누군가 만들어놓은 길을 가기보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먼저 발을 내딛었던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최초’ 혹은 ‘신기록 제조기’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송명근 박사는 ‘어떤 수술 방법이 환자에게 더 안전할까’, ‘어떻게 해야 한 생명을 더 살릴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항상 마음에 품고 산다. 그래서 늘 새로운 수술법 개발을 위해 연구하고 수술 중 발견한 작은 문제점도 결코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이 반드시 개선해 다음 수술에는 같은 문제점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야 만다. 또 수술실 안에 들어온 이상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그 자신은 물론 함께 하는 의사, 간호사들까지 조금의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공부하지 않는 것은 죄’라며 자신은 물론 후배들에게도 가장 혹독하게 주문하는 것이 ‘공부’와 ‘(수술)기술연마’다. 이러한 노력이 전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심장수술 성공률 99%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게 된 비결이다.

국내 심장수술 분야 1인자로 불리는 그는 충분히 자만심을 가질 만도 하지만 오히려 “나를 믿고 이끌어 주며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교수님들과 병원장님들 덕분에 오늘까지 올 수 있었다”며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오직 ‘환자를 위한’, ‘환자에 의한’, ‘환자의 병원’을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외길 의료인생을 걷고 있는 송명근 박사를 만났다.


ⓒ뉴스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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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독한 노력형 인간, 신기록 제조기 되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후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1984년 심장수술 성공률이 50%에 불과할 만큼 심장 부문에 불모지였던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 오리건대 부속병원 전임의를 지내며 심장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과 기술을 익힌 그는 2년 만인 1986년 미국에 남으라는 스승의 권유를 거절하고 한국행을 선택했다.

그의 귀국 소식을 들은 국내 굴지 대학병원들이 러브콜을 보냈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병원은 당시 중소병원이었던 부천 세종병원. ‘화려한 간판에 묻어가기보다 내가 일하는 그곳을 세계적인 심장센터로 만들겠다’는 평소 지론 때문이었다. 세종병원을 한국 최고 심장센터로 만들겠다고 다짐한 그는 불과 1년 만에 결실을 보았다. 연간 100회 정도 수술하던 곳을 700회 이상 하는 심장수술의 메카로 탈바꿈시킨 것. 소아 심장병 분야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 올렸고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수술법을 발표하면서 국내 최고 선천성 심장병센터로 발전시켰다. 국내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성장을 거듭한 세종병원은 현재까지도 이 분야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1989년 서울아산병원(당시 서울중앙병원)이 문을 열면서 자리를 옮긴 그는 5년 만에 국내 최고의 심장센터로 발돋움시켰다. 특히 심장이식과 관상동맥, 판막 분야에 대해서는 세계적인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심장이식 성공률 99%라는 경이로운 성적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뿐만 아니라 대동맥판막 성형술은 세계 의료계가 반신반의할 정도의 수준을 자랑한다.

18년간 몸담았던 아산병원에 세계최고의 심장센터라는 명성을 선물한 그는 또 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지난해 10월 1일 건국대학교병원으로 자리를 옮겨 자신의 이름을 내건 ‘송명근 심혈관외과클리닉’을 오픈한 것. 옮기는 병원마다 ‘송명근 효과’를 일으켰던 그는 이번에는 세계 최고를 넘어 ‘세계를 선도하는’ 병원을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실현하는 중이다.

18년간 몸담았던 서울아산병원을 떠난 이유가 궁금하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올 때 스승이었던 스타 교수에게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데 귀감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때 스타 교수는 ‘앞으로 인생을 10년씩 세 번 산다고 생각하고 첫 번째 10년간은 많은 일을 해서 너 자신을 유명하게 만들어라. 두 번째 10년간은 전력투구해서 그 일들을 확대시켜라. 마지막 10년은 그때까지 한 일을 꽃피워서 다른 사람이 하지 않은 일을 많이 성취하라’는 조언을 해줬다.

그 말을 들은 후 현재까지 20년이 지났고 앞으로 10년이 더 남았다. 마지막 열정을 가지고 심장 분야에서 쇄기를 박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산병원에서 오래 있다 보니 원로 대접을 하면서 자꾸만 쉬라고 했다. 지금까지의 업적만 가지고도 충분하다는 분위기가 싫었다. 지금보다 더 바쁘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싶어서 새로운 곳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마침 건국대병원에서 제의가 들어와 수락했다. 이곳은 아직 시작하는 단계라서 내가 할 일이 많아 좋다.

근무했던 병원마다 ‘송명근 효과’가 나타난 비결이 무엇인가.
부천세종병원이 최고 심장전문 병원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매우 보람되고 아산병원이나 건국대 역시 국내 최고 심장센터 역할을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내 개인의 능력만으로 이루어진 결과는 아니다. 개인의 능력보다는 팀워크와 철저한 지원 등 여러 가지 제반 시스템이 중요했다. 함께 한 연구원들의 실력이 좋았고 병원의 지원도 한몫했다. 우리나라 국민성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만 불어넣어 주면 순식간에 활활 타오르는 특성이 있다. 굳이 비결을 찾자면 열심히 노력하는 마음과 함께 일하는 연구원들의 열정에 불을 지펴준 리더십에 있다고 생각한다. 열정이 있어도 주변의 도움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의사들과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들, 연구비 등을 지원해주는 학회, 병원 원장님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힘입은 결과다.

최고의 자리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공 이면의 노력들이 궁금하다.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이 너무 어려워서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하면 이룰 게 없다. 하지만 그 일이 굉장히 어려울지라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결국 이루게 된다. 미국 유학 당시 미국 학생들은 왼손잡이가 많았는데 오른손도 왼손만큼 쓰다 보니 양손을 자유자재로 쓰는 모습이 부러웠다.

그래서 나도 왼손을 오른손처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약 6개월을 세수, 문 열기, 밥 먹기, 글쓰기, 바느질 등 모든 일에 왼손만 사용했다. 그랬더니 스스로 깜짝 놀랄 정도로 왼손 사용이 쉬워졌다. 양손을 다 쓰다 보니 수술 속도가 이전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정교하고 빨라졌다. 이외에도 수술할 때 현미경으로 3배 확대하는 훈련을 하지만 20배를 확대해서 미세수술을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면서 악착같이 연습한 결과 6주 만에 현미경 수술 자격증을 땄다. 보통 학생들은 6개월은 해야 겨우 딸 수 있는 것을 6주 만에 하다 보니 주변 친구들이 매우 놀라워했다. 거의 유래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은 없었는가.
정확한 요령을 갖추고 하겠다는 뜻과 할 수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어떤 일을 시켰을 때 ‘가능한지 모르지만 어렵겠다’고 답하는 것을 싫어한다. 대신 ‘어렵지만 가능하다’는 대답을 하는 사람은 신뢰할 수 있어 주위에 두려고 한다. 아무리 어려운 난관이 있더라도 훈련과 뼈저린 노력만 있다면 이루지 못할 일은 없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자신에게 천재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6개월만’이라는 별명도 있던데.
초등학교 때 성적이 중간정도였는데 6개월 동안 공부해서 반 1등을 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내내 놀다가 3학년 때 집중적으로 공부해서 고등학교 입학할 당시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고등학교 3학년 초까지는 전체 200등 정도였는데 6개월 동안 공부해서 이과 전체수석으로 서울대 의대에 들어갔다. 물론 의과대학 공부는 요령으로 하지 않고 지식을 갖추는 것이니까 가장 미련한 방법이지만 항상 책을 다 읽고 전부 외워버렸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다들 처음에는 믿지 않는다. 지금은 일에 집중하느라 골프를 거의 못 치는데 65세쯤 되면 골프를 칠 생각이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내가 6개월만 치면 박세리 선수보다 잘 칠 것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천재는 아니고 정해진 시간 동안 집중해서 노력한 결과다.

6개월 만에 성과를 내는 비결이 궁금하다.
나에게 6개월은 가장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6개월 정도 남겨놓고 전력투구해야 빠른 속도로 도달할 수 있다. 고등학교 1학년부터 공부한다고 해도 마지막에 지치면 다 무너진다. 개인적으로 나는 매일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시간을 정해놓고 집중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죽을 힘을 다해서 노력하면 안 되는 것은 별로 없었다. 다만 그래도 안 됐다면 그 사람은 방법, 요령, 시간 사용법이 틀렸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든지 시간 안배가 가장 중요하다. 6개월이라는 단어가 나와서 말이지만 적당히 해서는 안 된다. 나에게 시간이 주어지면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을 나열한 뒤 거기에 시간을 할애하고 얼마나 투자하면 이루어질지 생각하고 계획을 세운다. 그냥 6개월, 1년을 열심히 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어떻게 적절한 시간과 노력을 안배할 것인지를 먼저 훈련해야 한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장 먼저 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나.
그동안 수천 번의 수술을 경험하면서 미지의 세계를 가야할 때가 많았다. 내가 처음부터 새로운 길을 가려고 했던 것이 아니고 환자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니 생긴 결과다.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기에 어려운 수술을 앞두곤 밤새 염려하고 확인하면서 일을 진행한다. 이 수술은 어떻게 풀까 며칠을 고민하다 보면 꿈까지 꾼다. 하지만 내가 정작 두려워하고 위험하게 생각하는 것은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마음속에 정확한 판단과 치밀한 계획, 과감한 실천, 철저한 사후평가라는 4단계 원칙을 새기고 있다.

실력이 너무 뛰어나서 주변의 시기가 많았다던데.
의료계는 가장 보수적이며 선후배 관계가 뚜렷한 곳이다. 처음 심장이식을 성공했을 당시 선배들에게 야단을 맞았다. 이유는 원로 교수님들이 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먼저 했다는 이유였다. 사실 그 원로 교수님들이 지원해주셨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수술이었다. 무엇인가 하나를 이루어나가는 과정에 장애물이 많았다. 심장이식만 해도 처음에는 ‘이 수술로 몇 명이나 살릴 수 있겠느냐’, ‘새로운 시술법이 나오면 효과가 있겠느냐’는 식으로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이것을 방해라고 생각하거나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 오히려 나를 지원해주고 격려해준 많은 스승님, 선배님, 병원장님들 덕분에 모든 것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또 개인적으로는 심장 수술을 받기 위해 내가 속한 병원으로 많은 환자들이 몰려와 미안한 점도 있지만 계속 새로운 시술법을 개발하게 되어 보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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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환자를 위한 병원 만들다
지난해 10월 평생 병원장급으로 대우한다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건국대병원에 스카우트된 송명근 박사는 이곳에서 새로운 병원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를 즐기는 그가 도전하고 있는 새로운 과제는 ‘환자 중심의 병원’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한 의지의 일환으로 24시간 핫라인을 운영하고 불필요한 모든 절차들을 간소화하는 일에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환자중심의 병원이란 어떤 곳인가.
평소 꼭 하고 싶었던 것이 환자중심의 병원을 만드는 것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병원이 의사나 병원중심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환자가 와서 의사를 기다리고 의사의 시스템에 맞춰야 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 의사가 환자를 보고 싶을 때 보고 환자가 의사를 만나고 싶어도 약속이 되어 있지 않으면 쉽지 않다. 위급한 상황에 병원에 와도 전문의는 없고 인턴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이 우리나라 병원의 고질적인 병폐인데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환자가 필요한 시간에 의료서비스가 제공되는 병원, 환자가 가장 편리한 시간에 두려움 없이 완벽한 수술이 이뤄지도록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는 병원을 만들고자 한다. 그래서 환자를 위한 ‘24시간 핫라인’도 가동 중이다.

24시간 핫라인에 대해 설명해 달라.
환자가 위급할 때 항상 환자 옆에 있는 병원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24시간 핫라인 서비스다. 밤이나 낮이나 상관없이 특히 취약한 밤이나 주말에 환자가 위급할 때 5분 이내에 환자 상태에 대해 답변을 해줄 수 있도록 병원과 환자 사이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다. 실제로 핫라인을 운영하면서 위급환자를 많이 구했다. 심장질환은 갑자기 발병하는 경향이 많아 환자들이 많이 불안해한다. 그런데 전화로 언제든지 연결이 가능해지면서 집에서도 안락하게 지낼 수 있게 됐다.

국내 대학병원 최초로 자신의 이름을 건 클리닉을 오픈했다. 부담은 없는가.
부담은 없고 오히려 내가 원하는 환자중심의 병원을 만들 수 있어 좋다. 병원규모가 커질수록 의사결정이 늦어진다. 심장은 촌각을 다투는 것이기 때문에 환자들을 위해서는 의사결정이 빨리 진행돼야 한다. 그래서 건국대병원 시스템은 복잡한 의사결정 시스템을 다 줄였다. 모든 제도를 환자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개선하는 중이다. 심장센터가 제대로 성장하려면 굉장히 많은 지원이 필요한데 다행히 병원에서 지원을 잘 해주고 있다.

환자에 대한 애착이 큰 것 같다.
미국에서 수업료도 받지 않고 나를 지도해준 한 교수님이 “내가 너를 위해 가르쳤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나는 네가 앞으로 가르칠 의사들과 앞으로 치료할 환자들을 위해 가르친 것이다. 나에게 갚을 것이 있다면 네 환자들에게 갚아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평생 누구한테 무엇을 갚아야 하는지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지금은 그것을 갚아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직접 개발한 판막기능 보조 장치(SS-Ring)가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다고 들었다.
심장에서 대동맥으로 피가 뿜어져 나가는 길목인 대동맥 판막에 문제가 생기면 판막 전체를 인공판막으로 갈아 끼우는 것이 기존 수술법이었다. 그런데 이때 사용하는 인공 판막이 쇠로 만들어져 있어 평생 약을 먹어야 하고 후유증도 많다. 하다못해 치과에서 이만 빼려고 해도 문제가 생겼다. 비용도 비싸서 인공 판막비용만 400~500만 원이 소요된다. 돼지나 소의 심장으로 만든 인공판막도 있지만 짧게는 8~10년, 길게는 15년 내에 재수술을 해야 한다. 어떤 판막을 쓰더라도 완치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를 개선할 방법이 없을까 연구하다가 판막기능이 잘 작동하지 않는 부위만 단단히 잡아주면 판막 기능을 되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많은 연구 끝에 판막기능 보조 장치인 ‘SS-Ring’을 개발한 뒤에는 돼지 심장을 가지고 이를 이용한 수술법을 연습했다. 지금까지 쓰인 돼지 심장만 1천여 개에 이른다. 그리고 1997년 심장 판막 장비를 제조 판매하는 ‘사이언스시티’라는 회사를 세우고 판매를 시작했다. 제품은 한 세트 가격이 240만 원 선으로 기존 인공판막의 절반 수준이다.

SS-Ring이 심장판막계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던데.
국내는 물론 미국·유럽·일본 등 전 세계에서 특허를 받았고 이를 이용해 수술하고 싶다는 요청이 세계 각국에서 들어오고 있다. SS-Ring을 이용한 수술과정을 보여 달라는 국제학회의 특강요청도 1년에 10회에 이른다. 이밖에도 수술법 전수를 요청하는 병원도 있고 이 제품을 만드는 회사의 경영권을 인수하겠다는 제안도 많다. 심지어 이 제품을 불법 복제해 판매한 회사까지 나타날 정도다. 현재 전 세계 심장판막 시장은 1조 원이 넘는다. 내가 개발한 제품이 기존 판막시장을 뒤엎을만한 것이어서 처음에는 협박도 많이 받았다. 앞으로 세계시장에서 SS-Ring 점유율이 점점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의료산업이 될 수도 있다. 부가가치가 뛰어난 만큼 절대 외국회사에 팔지 않고 국내 브랜드로 승부할 생각이다.

SS-Ring 외에 개발한 새로운 수술법은 어떤 것이 있나.
지난 20여 년간 연구한 끝에 ‘대동맥판막 성형술’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개발했다. 그동안 대동맥 판막 질환은 일부 예외적인 성공사례를 제외하고는 거의 치료가 힘들었다. 이번에 개발한 ‘종합적 대동맥 근부 및 판막 성형술’과 ‘종합적 승모판막 재건 성형술’은 가장 이상적인 대동맥 판막 수술법으로 기존의 고식적 판막 치환술과 달리 완치할 수 있는 수술법이다. 지난 8월 23일 환자 가족들과 의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직접 수술을 시연해 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이 수술법이 널리 전해지면 국제적으로 5년 이내에 기존 판막 치환술은 거의 사라질 것이다. 오는 11월부터는 외국인 의사들에게 기술교육을 진행할 예정인데 벌써 예약이 마무리된 상태다. 이러한 기술들이 앞으로 한국 의료산업 발전에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모바일로 심전도를 체크할 수 있는 기계를 개발했는데 어떤 제품인가.
멀리 있는 심장병 환자 상태도 휴대전화를 이용해 실시간 점검하고 진료가 가능하도록 개발한 것이다. 심장 이상이 의심되면 환자가 직접 가슴에 단자를 붙이고 이를 휴대전화에 연결한다. 그러면 휴대전화 서버를 통해 병원 모니터로 자동 전송되고 의사는 환자의 심전도 정보를 분석해 즉각 필요한 조치를 하게 된다. 올해 안에 상용화되면 어디에서나 병원에 준하는 의료서비스를 받게 될 것이다.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개발해 내는 비결이 무엇인가.
‘티끌 모아 태산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처럼 작은 불편들을 고치다 보니 점점 개선이 되어 6개월, 1년이 지나면 완전히 새롭게 변화한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후배들에게 바로 교육시켜 공유한다. SS-Ring 또한 기존 판막장치를 이용하면 완치가 힘들어 계속 재수술을 해야 하는 불편을 어떻게 개선할까 고민한 끝에 탄생한 것이다. 환자를 대할 때마다 ‘어떻게 해야 더 잘 치료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하다 보니 조금씩 새로운 방법들이 개발되는 것 같다.

의사로서 가져야할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후배들에게 철저하게 교육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의사로서 지식이나 기술, 경험이 부족하면 죄인’이라는 점이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것에 대한 책임감은 끝이 없다. 기계를 다루다가 실수하면 고치거나 버리면 되지만 사람의 생명은 그 자체뿐, 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식이나 기술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항상 공부하고 또 기술을 익히기 위해 연습해야 한다.

또 한 가지는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자세다. 내가 절대 용납하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잠을 안자고 밤새 술을 마셨거나 과로한 상태에서 수술실에 들어오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절대로 수술실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가끔 수술시간이 길어지다 보면 후배들이 졸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내 부모, 내 아이, 내 아내가 누워 있다면 잠이 오겠으며 헛점을 보이겠느냐’고 질타한다. 내 가족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소중한 부모님, 아내,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면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을 수 없다. 또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이 의사의 덕목에서 가장 강조되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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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간 송명근의 삶은 ‘잠시 보류’
현재까지 실시한 심장수술 횟수만 9,000여 회에 육박하고 연습을 위해 돼지 심장수술을 한 것까지 더하면 1만여 회가 훌쩍 넘는다. 연간 700~800회 수술을 하고 있는데 이는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치다. 하루 평균 2~3명, 많을 때는 5명까지 수술을 한다. 한 사람 당 최소 3시간가량 소요되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과 체력이 요구된다. 하지만 정작 놀라운 것은 환자의 생존율이다. 전 세계 평균 성공률이 60%에 불과한데 반해 송명근 교수는 99% 이상을 자랑한다. 이에 송명근 박사는 “심장수술은 우리나라가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심장 분야 최고 권위자로서 명예와 부를 모두 거머쥔 송명근 박사는 200억 원이 넘는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서약한 사실이 밝혀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미 5년 전 재산 기부에 대해 공증까지 마친 그는 “사회생활로 번 돈은 사회에 돌려주는 것이 나의 철학”이라고 말한다. 두 자녀에게 각각 3억 원씩만 물려주고 나머지는 얼마가 되었든지 모두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정할 당시만 해도 그의 재산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개발한 판막기능 보조장치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갑자기 200억 대로 불어났고 앞으로 얼마나 더 늘어날지 알 수 없을 정도다. 불어난 재산 앞에서 잠시 고민이 생길법도 한데 그는 오히려 마음이 흔들릴까봐 기부사실을 언론에 공개하는 강수를 두었다.

전 재산 기부에 대한 가족의 반대는 없었는가.
오히려 아내가 더 적극적이다. 함께 의사의 길을 걷고 있는 자녀들에게는 돈 대신 진정한 꿈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돈이 많으면 자연스럽게 사치를 하게 되고 그것은 자신을 파탄에 이르게 한다. 자식들에게 아무 이유 없이 돈을 주면 뭐하겠나. 그것은 일하고 노력하는 즐거움을 빼앗는 것이다. 요즘 부모 재산 때문에 형제끼리 싸움을 하고 자식에게 재산 물려주려다가 망신당하는 기업인도 많은데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또 내가 이렇게 성장하고 많은 연구를 할 수 있게 된 것도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 덕분인데 그것을 사회에 다시 돌려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기부에 대한 철학이 있는가.
서로 배려하는 밝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결국 내 후손들이 행복한 삶을 사는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자식, 내 후손만 배려할 것이 아니라 사회를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평소 철학이다. 또 그것이 진정한 나눔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많다. 또 기부를 하고 싶어도 방법을 잘 모르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마음은 있지만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잘 모르기 때문에 앞으로 내 재산이 얼마나 더 불어날지 알 수 없지만 이 분야 전문가에게 위임할 계획이다. 기부한 돈은 심장병 연구와 소외된 노인들, 버려진 아이들을 위한 복지에 쓰이길 바란다.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들었다. 어떤 분들이었나.
아버지는 보통 부모들과 달리 성적보다는 호기심을 유발하는 공부법을 알려주셨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웃어버릴 일들도 아버지는 늘 진지하게 들어주셨고 시험 답안을 엉뚱하게 써서 점수를 못 받으면 ‘왜 그렇게 했느냐’고 질타하기보다 이유를 듣고 타당성이 있으면 그것이 정답이라고 인정해주셨다. 인생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자신감을 키워준 것이 현재까지 큰 도움이 되었다.

악착같이 일하는 것, 연구에 몰두하는 것, 남을 돕고 배려하는 것 등 모두 어린 시절 아버지께 배운 것들이다. 어머니에게는 정서적인 면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전쟁 직후 한참 어려웠던 시절 집에 거지가 찾아오면 절대 그냥 보내시는 법이 없었다. 하다못해 소금장사, 굴젓장사가 와도 그냥 보내지 않고 밥상을 차려주곤 하셨다. 당시에는 ‘우리 먹을 것도 없는데 왜 저러시나’ 불만도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남을 돕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어머니는 현재까지도 이웃에 어려운 분들이 있으면 도와주고 계신다.

자신의 성공에 주변 배경이 도움이 되었나.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하게 되면 주변여건을 탓한다. 하지만 내 경우를 보면 여건은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다. 나는 한국전쟁 후 폐허 속에서 학교를 다녔고 사회 혼란기 속에서 공부를 했다. 집안이 경제적으로 풍요로웠던 것도 아니다. 그런 현실에서도 비관하지 않고 스스로 길을 개척하고 돌파구를 마련한다면 반드시 길이 보인다는 것이 나의 철칙이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
의사는 세 가지를 관리해야 한다. 첫째는 정신적인 안정이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면 갈등을 만들지 않고 집안일도 사소한 일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집에 가면 새롭게 충전할 수 있도록 오로지 쉬기만 한다. 둘째는 체력이다. 예전에는 자전거를 주로 탔는데 손을 다친 이후로는 걷기만 하고 있다. 가능하면 아침저녁으로 30~40분 정도 걸으며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마지막으로 음식이다. 먹는 것도 신중하게 하는 편인데 소식하고 균형 잡힌 식사를 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추가로 담배는 피우지 않고 술도 거의 안하지만 좋은 자리에서는 두 잔 정도 하고 그 이상은 마시지 않는다.

하루 일과가 병원과 집만 오가는 편인데 삶이 지루하지 않은가.
예전에는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골프도 치고, 등산도 하고, 보트도 즐겨 탔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큰 즐거움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다. 그보다 보람 있고 신명나는 일이 없다. 죽음에 임박해서 온 환자가 건강을 되찾아서 웃는 얼굴로 퇴원하는 것을 보면 얼싸안고 춤이라도 추고 싶을 만큼 즐겁다. 그래서 골프를 치는 것보다 생명이 경각에 달린 사람의 건강을 되찾아 주는 일이 지금으로써는 더 좋다. 이것이 단순한 책임감 때문이라면 계속하기 힘든 일일 것이다. 병으로 고통 받고 죽어가는 환자를 살리고 가족에게 아버지, 부인, 자식의 생명을 건강하게 돌려줄 때 느끼는 환희로 보답 받았다고 생각한다.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평생 한 우물만 오롯이 팔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34년간 한 우물을 파면서 한결같은 열정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북극성과 같은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그에 대한 중·단기 목표를 계속 수정해 나가면 지칠 일도 없고 매너리즘에 빠질 일도 없다. 뚜렷한 목표는 나 자신을 궤도 밖으로 벗어나지 않게 한다. 중기목표는 내가 하는 일을 되돌아보게 하며 단기목표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한다. 목표를 갖더라도 쉽게 이루어지는 작은 목표보다는 평생을 두고 노력해야 이룰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남산이 아니라 에베레스트 산에 오르겠다는 목표,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앞으로 가능하게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으면 인생이 즐거워지고 에너지를 계속 보충할 수 있다.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은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다. 싱싱하게 살아있고 먼 곳을 바라보는 꿈이 있어야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개척할 수 있다.

앞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첫째는 심장수술과 관련한 새로운 수술법을 계속 개발하는 것, 둘째는 70세까지 현역에서 일하는 것, 마지막으로는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던 노벨상을 타는 것이다. 은퇴 전에 한국에 노벨의학상을 안겨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